
≪천자문≫은 오랫동안 어린이가 문자를 배우는 첫 번째 교과서로 사용되어 왔다. 그 고향인 중국뿐만 아니라 이웃에 있는 한자 문화권의 여러 나라, 그러니까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널리 쓰였을 뿐만 아니라 몽골어 번역본도 있다. 근대에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까지 보급되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등으로도 번역되었다.
전통 시대 ≪천자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일상과 문화에 뿌리를 내렸다. 우리가 물건이나 사람의 순번을 매길 때 1, 2, 3, 4라는 아라비아 숫자를 쓰거나 a, b, c, d라는 영어 알파벳이나 ㄱ, ㄴ, ㄷ, ㄹ이라는 한글 자음을 사용했다. 과거에는 무엇을 사용했을까? 천자문이 답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천자문≫의 천天, 지地, 현玄, 황黃 등이 순서대로 1, 2, 3, 4처럼 쓰였다. 이를 보면 ≪천자문≫은 한자 학습용 서적이면서도 아주 다양한 일상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천자문≫의 탄생
≪천자문≫은 사언四言(네 글자 구句)의 운문으로 이어진 천 개의 각각 다른 문자의 집합으로, 그 운문의 작자는 양나라 주흥사周興嗣이다. 그가 ≪천자문≫을 편집했던 일은 정사의 열전에 명기되어 있다. “왕희지가 쓴 천 개의 글자에 운을 달면서 (양나라 무제는) 모두 흥사를 시켜서 문장을 짓게 했다”(≪양서梁書≫ 권72, <문학전文學傳>).
9세기 후반 사람인 당의 이작李綽은 ≪상서고실尙書故實≫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양의 무제는 왕자들에게 글자를 익히게 하기 위해서, 왕희지의 필적 가운데 중복되지 않게 문자 천 자의 모본模本을 만들게 했는데, 한 자씩 종잇조각에 쓰였는데 뒤죽박죽이어서 두서가 없었다. 무제는 주흥사를 불러서 “이것을 운문이 되도록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그래서 주흥사는 하룻밤 걸려 천 자를 이용해 정연한 운문 한 편을 만들어 무제에게 바쳤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천자문≫이 처음에는 글자를 익히는 용도의 책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알려준다.
≪천자문≫의 유행
당 제국 때 ≪천자문≫이 얼마나 유행했던가는 중국 서북 변경, 둔황의 천불동千佛洞에서 발견된 문서 가운데 그 사본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늘날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펠리오(P. Pelliot) 수집품만도 45권에 이른다고 한며, 스타인(A. Stein)이 수집한 런던의 대영박물관 소장품 가운데도 대략 20권 이상이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흥미 있는 것은 ≪천자문≫의 글자를 몇 번이고 베껴 적은 단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필筆 자를 서른 번씩 두 줄로 쓰고 이어서 윤倫 자를 같은 꼴로 쓰는 식이다. ≪천자문≫의 서너 구, 열 몇 자를 쓴 연습용 종이에 지나지 않지만, 당나라 사람들이 열심히 이 글씨를 연습했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전래 시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천자문≫이 한자를 배우는 입문서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그리하여 이 책에 ‘天 하늘텬’과 같이 새김과 음을 달아 읽게 되었고 이 석음釋音을 단 책이 간행되었다. 서당에서 훈장님에게 ≪천자문」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요즘 사람들도 ‘하늘 천 따 지’란 말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천자문≫의 부활
한자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한글 전용 논란과 얽혀 한동안 뒷전에 밀려났었다. 그런데 1992년 한중 수교를 즈음하여 언어의 세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고 사람들은 밀쳐놓았던 한문을 다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때마침 ≪마법 천자문≫과 ≪김성동 천자문≫이 출간되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으니 ≪천자문≫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보면 ≪천자문≫ 또는 ≪천자문≫ 관련 서적이 많이 있다. 책이 다른 만큼 책의 내용도 다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은 ≪천자문≫의 글귀를 번역하고 옮긴이가 나름대로 해설하는 식이다.
이와 달리 나름대로 특징을 가지는 책도 있다. 예컨대 ≪천자문≫(이민수 역해)은 기본적으로 자해를 풀이하고 ≪천자문≫ 구절의 출처를 나름대로 밝히려고 노력하였고, ≪대동천자문≫(김균 지음, 이광호 옮김)은 기존 천자문과 달리 한국의 역사를 담으려고 했다. 물론 그 속에 포함된 한자는 ≪천자문≫과 같은 것도 있지만 다른 것도 있으므로 천자문을 확대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한편≪욕망하는 천자문≫(김근)은 ≪천자문≫의 번역보다는 글자의 어원을 해명하고 ≪천자문≫의 중화中華 세계가 타자를 어떻게 흡수했는지 비판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이들 모두 기존에 출간된 서로 엇비슷한 ≪천자문≫의 방식을 벗어나 제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나름의 장점이 있다.
≪천자문≫의 이념 세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간 ≪세상을 삼킨 천자문≫의 역자는 관련 서적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한자 학습이라는 실용적 목적에서 ≪천자문≫을 풀어내거나 현대인의 안목으로 ≪천자문≫ 속에 담긴 이념 세계를 파헤치는 것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천자문≫이 오랜 역사 속에서 오늘날의 사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람들에 의해 읽혀진 자기 나름의 특징을 지니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이런 특징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천자문≫을 오늘로 가져와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재배치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지 않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천자문≫의 첫 구절은 다들 알다시피 ‘천지현황天地玄黃’이다. 오늘날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구절은 당치않다. 도대체 왜 하늘이 검붉은 색이며 땅이 황색인가? 18세기에 박지원도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다가 ‘왜 하늘이 파랗지 않고 검붉은 색이라 말하는가?’라 묻는 말에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했었다고 한다.
역자는 ‘천지현황’을 현대의 과학적 관점이 아니라 그 시대의 철학적 관점에서 읽어 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하늘은 이 세계의 모든 사물을 끊임없이 낳고 또 낳는 근원으로, 이 근원성에 어울리는 색은 다른 색이 아니라 검은색이다. 왜냐하면 하늘은 인간이 환히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제때에 사물을 생성시키므로 투시가 불가능한 검은색과 가장 어울린다. 검은색이라도 흑黑이라고 하지 않고 현玄이라 한 것은 ≪노자≫ 이래로 현이 검은색과 근원을 나타내는 것으로 널리 읽혀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천자문≫은 처음부터 현대인의 과학적 안목으로 들여다볼 수 없는 자체의 논리를 그 속에 감추고 있었다. 이 논리가 ≪천자문≫의 과거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각인되면서, 저자는 그 논리에 반영된 세계의 질서를 더욱 굳건하게 하고 널리 퍼뜨렸던 것이다. ≪천자문≫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세상의 질서를 담아내고 다시금 그 의미의 세계를 독자에게 끊임없이 실어 날랐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역자는 ≪천자문≫이 세상을 삼킨 책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두 가지 뜻을 갖는데, 하나는 세상의 질서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독자로 하여금 ≪천자문≫의 이념 세계로 끊임없이 끌어들인다는 뜻이다.
이러한 생각을 실현하려면 전통 시대에 쓰인 ≪천자문≫에 대한 좋은 주석서가 필요하기 마련인데, 역자는 6세기 무렵의 위진남북조 시대에 북위北魏에서 활약했던 이섬李暹의 주석서에 주목하였다. 이 책은 ≪천자문≫이 만들어진 뒤 얼마 되지 않아 나온 주석서로 훗날 ≪천자문≫ 읽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주해천자문≫은 이섬의 풀이를 충실하게 번역하기도 했지만 일본의 중국문학 전문가 오가와 다마키小川環樹(1910~1993)의 설명을 통해 ≪천자문≫의 구성과 역사를 보다 생생하게 알 수 있다. 그는 일본의 대표적인 중국사 학자 가이즈카 시게키具塚茂樹(1904~1987)의 동생으로 대대로 책 향기가 짙게 밴 가문에서 자라 학문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천자문≫은 무엇일까? 우리는 더 이상 ≪천자문≫이 담고 있는 이념을 자신의 세계로 되가져오기 위해 그것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담고 있는 문화적 세계를 이해하고, 보다 더 큰 사유의 집을 만나는 창을 여는 것으로 보면 좋을 듯하다.
세상을 삼킨 천자문이섬 주석,오가와 다마키.기다 아키요시 주해, 신정근 옮김 / 심산
나의 점수 : ★★★★
천자문은 단순한 습자용 교본이 아니었다.
+ 학진이나 대학에서 하루 빨리 번역을 무엇보다 중요한 연구 업적의 하나로 인정하길 바랄 뿐이다.





